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만수/선수 경력 (문단 편집) == 은퇴 ==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급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말년에는 우승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선수의 성적과 결과만 보고 가차없이 결정하던 삼성그룹 특유의 방식때문에 구단과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은퇴식도 없이 1997 시즌 후 방출당했고,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은퇴를 당했다.[* 동기생 [[김성한]]은 1995 시즌에 광주 무등구장 홈경기에서 팬들의 축하를 받으며 은퇴식을 가졌다. 이만수가 양복을 입고 광주 구장을 방문하여 김성한에게 직접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전설의 타이거즈]]채널에 당시 영상이 있다.] 당시 삼성 팬들의 어마어마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207310|반발은 덤.]] 안 좋게 커리어를 마무리한 레전드의 대표 사례격으로, 제아무리 초특급선수라도 나이먹고 노쇠하면 구단도 처치곤란인데 발이 느린데다가 나이를 먹은 후 포수 수비가 불가능하게 되면 다른 포지션으로 전업하지 않는한 [[지명타자]]외에는 자리가 없는데도 이만수는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포지션 전환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은퇴할 당시 이만수의 나이는 '''만 39세'''였다. 반면 팬들의 지지가 여전히 두터웠고 현역 연장 욕심이 있었던 이만수의 입장과 달리 뛸 수 있는 상황이 한정되었기 때문에 대타 외에는 보직을 제대로 줄 수 없는 감독 입장에서 매우 곤란한 상태였다.(1999년 시즌까지 뛰고 야구계로 현역 은퇴 당시 만 41세) 그러나 이 부분이 주장이 좀 틀린것은 이만수가 다른 포지션으로 전업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나오는데...93년이후 1루수와 대타로 포지션을 옮겼다. 94년엔 2경기 포수수비를 보긴 했지만, 이후론 포수로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않는다. 대타로는 여전히 가치가 있었으나 은퇴시점의 기록은 그렇다기엔 아쉬웠다. 또한 노장이 자리 차지하면 신인급의 성장에 방해되는건 사실이니 그런 면이라면 몰라도 포지션 전업을 안해서 문제였다는건 억지 주장이다. 다만 기용상황이 한정되었다는 것 자체는 맞는 말. 이만수가 1루수로 전업했을 때 1루수 요원은 이만수 말고도 [[이승엽]]과 [[양준혁]]이 있었다.~~그리고 훗날 셋이 사이좋게 [[KBO 영구결번]]~~ 양준혁은 그래도 외야수도 볼 수 있었던 반면 이만수는 외야수를 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승엽의 1루 수비가 썩 괜찮았던지라, 당시 이만수는 주로 지명타자 및 1루 대타 등으로써 활용되었다. 거기에 95년 신인왕이었던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역시 원래는 1루 요원이었던지라, 이동수가 3루 주전에서 빠진 1996년에는 이들을 최대한 활용해 보고자 이승엽을 외야수로, 이만수와 이동수를 각각 지명타자/1루수로 기용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동수가 성장하지 못하면서 이는 수포로 돌아갔다. 위에서 1990년대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라 언급했지만, 실제로 주전 포수 자리를 내놓은 건 1993 시즌부터이고 사실상 대타 외에 기용이 어려웠음에도 1993~1996년 4년 동안 대타로 총 777타수를 기록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타석에서의 기회는 상당히 많이 받은 셈. 또한 wRC+에서 각각 133.1-111.4-135.0-92.7을 기록하여,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전성기보다 못할 뿐 괜찮은 전력으로 활동했다. 1997년의 경우 무릎 부상 악화로 선수 생활 자체가 어려운 가운데 치른 시즌이라 52타수에 불과. 그리고 삼성은 재계약을 포기한다. 은퇴식을 치른 삼성의 1호 선수는 이만수가 떠나고 2년 후에 은퇴한 [[유격수]] [[류중일]]. 은퇴 경기를 치른 삼성의 1호 선수는 [[양준혁]].[* 양준혁 이후 은퇴경기를 치른 선수는 다름 아닌 이승엽 선수다. 참고로 이승엽은 2017년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경기를 치렀다.] 이만수의 탈단과정과 이로인한 연고팬들의 반발 & KBO 레전드에 대한 KBO 구단들의 예우에 대한 야구팬들의 반발이 공론화되면서 한때 우승에 눈먼 토사구팽구단 이라는 악명까지 있던 삼성 라이온즈[* 물론, 90년대 프로야구판에서 은퇴선수 예우하는 팀은 '''단 한 팀도 없었다.''' 레전드 예우로 나름 좋은 평을 받는 한화 이글스도 안 알려진 8~90년대 레전드의 소리소문없는 은퇴사례가 적지 않고(대표적으로 악바리 이정훈), 우승을 이끈 99년 이후에야 [[장종훈]],[[송진우(야구)|송진우]]등의 선수의 은퇴를 예우하면서 좋아진 케이스. 사실 그마저도 일종의 [[으리]]에 가까운 케이스다.]도 이러한 악습이 많이 시정되었고 2003년에 22번을 이만수의 [[KBO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지만 삼성 구단의 레전드 죽이기의 안타까운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많은 삼성 팬들은 한 동안 '이만수 감독 복귀' 설을 꾸준히 밀기도 했었다. 그러나 2003년 삼성에서 감독 제의를 했다가 이만수가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준비까지 다 했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계약을 파기했던 사건을 생각하면 그냥 그들만의 꿈일 듯.[* 사실 통수 이미지 씌운건 이 사건이 제일 컸다.] 사실 이 때문에 당시 삼성에서는 [[김응용]] - [[선동열]] 라인이 매우 건재했었다. 2010년 시즌 후 준우승 감독인 선동열을 갑자기 내치긴 했으나 후속 감독은 이만수가 아닌, 삼성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이 맡게 되었고, 4년 연속 우승까지 안겨주게 되어 프런트나 팬들에게도 신임이 두터워져 이래저래 이만수의 삼성 복귀는 힘들 듯 하다. [[양준혁]], [[이종범]]에 이어 [[무릎팍도사]] 출연이 확정, 2010년 3월 3, 10일에 2편으로 나뉘어 방영되었다. [[http://blog.joins.com/usr/s/o/soncine/5/P000289120.jpg&width=500|해당 자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